전남 나주 가볼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드릴 내용은 전남 나주 가볼만한 곳 베스트10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영산포 홍어거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영산포 홍어거리 소개
영산포 홍어는 굽이굽이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올라와 닻을 내리면 잡힌 홍어가 먼 뱃길을 따라 올라오는 사이에 자연발효되어 독특하고 절묘한 맛을 내는 웰빙 식품입니다.
옛 영산포구가 있던 자리에 40여 곳의 홍어음식점과 도매상이 들어서 있습니다.
홍어거리에 들어서면 퀴퀴한 홍어 냄새가 진동합니다.
고려 말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 섬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습니다.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살던 섬주민들이 강을 따라 뭍으로 거슬러 왔는데, 그곳이 바로 나주의 영산포였다.
특히 흑산도 주변 영산도에서 피신 온 사람들이 많아 마을 이름이 영산포가 되었습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이들은 육지로 왔음에도 어로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흑산도 인근에서 고기를 잡아 배에 싣고 돌아왔는데, 더운 날이면 다른 생선은 썩어서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홍어만은 먹어도 아무런 탈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삭힌 홍어는 영산포의 특산물이 된 것입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나주인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탁주 안주로 곁들여 먹습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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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 홍어거리 기본 정보
나주 구진포 장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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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구진포 장어거리 소개
영산강 하구가 둑에 막히면서 자연산 장어가 거의 잡히지 않지만, 나주의 구진포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이어서 예로부터 장어가 유명하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다.
구진포삼거리를 중심으로 7~8곳의 장어집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1940년대에 들어선 집들이라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낸다.
구진포는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있는 나루라 해서 ‘구부나루’라 불렸다.
예전에는 영산강의 물이 앙암바위를 돌아 이곳에서 모여 다시 굽이친다 해서 회진포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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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구진포 장어거리 기본 정보
금성산(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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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전남) 소개
나주의 진산(鎭山)인 금성산의 높이는 451m이며, 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쪽 봉우리는 노적봉(露積峰), 서쪽 봉우리는 오도봉(悟道峰), 남쪽은 다복봉(多福峰), 북쪽은 정녕봉(定寧峰)이라 불리운다.
또한 금성산에는 금성산성이 있어 군사요새 기능도 하였던 곳인데, 지금은 공군 방공대가 있어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있습니다.
매년 1월 1일에는 정상에서 해맞이 행사와 페어데이 행사를 개최하여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금성산은 고려시대부터 국가에서 산신제를 지냈던 영산(靈山)으로서 매년 봄 가을이면 나주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해의 풍년과 태평함을 기원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금성산에는 5개의 사당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비록 현재는 없어졌지만 산 정상에는 상실사(上室祠), 중턱에는 중실사(中室祠), 산 기슭에는 하실사(下室祠)와 국제사(國際祠)가 있었으며 성 안에도 이조당(爾朝堂)이 있어 금성산이 신령스러웠음을 알게 해 준다.
그리고 금성산의 산신은 '금성대왕(錦城大王)'이라 불리는데, 현재에도 이 신을 모시는 무당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기도터로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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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전남) 기본 정보
나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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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호 소개
* 경관이 수려한 인공 호수, 나주호 *
영산강 종합개발계획의 하나로 만들어진 저수량 9,100만 톤의 인공 호수. 주변 경치가 뛰어나, 나주호와 인근 사찰들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습니다.
나주호는 다도면 판촌리, 궁원리, 방산리에 걸쳐져 있는 인공 담수호로, 1973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76년 9월 준공을 보았는데 댐의 길이는 496m입니다.
저수량은 9,100만 톤으로서 약 11,200ha의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대초 장터가 있던 대초리가 수몰되었습니다고 해서 대초댐이라고 부르는데, 공사로 인하여 다도면 면적의 30%에 해당하는 859,508m²(260만 평)의 면적과 650호의 주택이 수몰되기도 하였습니다.
* 나주호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 * 호수에는 잉어, 자라, 향어, 붕어 등 민물고기가 풍성하여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또한 나주호 인근에는 불회사, 운흥사, 화순 운주사가 인접해있고 삼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는 등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 휴양지로도 큰 각광을 받고 있으며, 남평읍 우산리 지역에는 골프장이 건립되고 있어 장차 도시 근교 휴식 관광지로 조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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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호 기본 정보
불회사(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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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회사(나주) 소개
불회사는 백양사의 말사로, 운흥사터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덕룡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진 태화 원년 (366년)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 창건되었고 희연조사 2창, 조선 태종 2년(1402) 원진국사가 3창하고, 정조 22년(1789) 큰 화재로 건물이 대부분 불타버린 것을 1800년 중건하였습니다.
회사는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은 없지만, 호젓한 분위기로 사람을 붙잡습니다.
대웅전(국가 보물)과 명부전,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가 동백숲을 뒤에 두르고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대웅전에 안치된 삼존불 중 비로자나불은 종이로 만든 지불로 유명하다.
계곡은 깊지 않아 산의 참맛은 덜 하나 절 주위의 전나무, 삼나무, 비나무 등의 숲은 아늑한 분위기를 이룬다.
단풍이 가장 늦게 드는 지역으로 그 빛깔이 인근에서 가장 아름답다.
절 입구에는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신상인 석장승 한쌍 (중요민속자료)이 서 있습니다.
할아버지 장승은 툭 튀어 나온 퉁방울눈을 하고, 이맛살을 굵게 찌푸려 남도 특유의 해학적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할머니 장승은 절을 찾는 사람들을 반기는 듯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 다정다감한 할머니의 표정 그대로입니다.
할아버지 장승의 키는 2.3미터, 할머니 장승은 1.7미터입니다.
* 불회사 창건시기에 대한 두 가지 설화 *
불회사의 창건 시기에 관해서는 두 가지 기록이 전하는데, 하나는 384년(침류왕 1)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창건하고 681년(신문왕 1)에 왕명으로 중창되었습니다고도 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367년(근초고왕 22)에 희연이 창건하고 713년에 연기가 중창했습니다는 설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의 이름이 불호사로 기록되어 있어 창건 때는 불호사였다가 1808년경에 불회사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절의 중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원진국사는 한때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 호랑이의 도움으로 경상도 안동 땅에서 시주를 얻어 대웅전을 중건하게 되었습니다.
공사가 이루어지자 원진은 좋은 날을 택하여 상량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일의 추진이 늦어져 어느새 해가 저물고 말았습니다.
이에 원진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를 하여 지는 해를 붙잡아두고, 예정된 날짜에 상량식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이때 원진이 기도하던 자리가 바로 일봉암이라고 합니다.
* 나주 불회사석장승 *
불회사 석장생은 사찰 입구 300m 지점 오솔길 좌우에 2기가 있습니다.
장승의 앞면에는 ‘당주’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당(唐)자 주(周)자 글씨는 길(道)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자는 사당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주자는 꼬불꼬불한 길을 뜻합니다.
2기 중 우측이 남장생이고 좌측이 여장생인데 여장생은 하반신이 지면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남장생(하원당장)은 얼굴 조각 선이 깊고 인상적이며 입 좌우에 치아가 각 1본씩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수염을 상징한 굵은 양각 선이 턱 아래에서 좌측으로 40cm쯤 내려와 있습니다.
얼굴이 남자상으로 선이 뚜렷하고 머리에서 중앙을 솟아오르게 하여 옛날 상투를 뜻한 것으로 보입니다.
각자는 원래 「하」인데 후세에 누구인지 장난삼아「정」자로 판 것 같다.
좌측 여장생(주장군)은 남장생에 비해 얼굴이 여성적으로 온화하며 웃는 인상이고 부드럽고 평면적입니다.
장생은 마을 수호신으로서의 장생과 이정표로서의 장생, 경계를 표시하는 장생이 있는데, 세워진 장소는 주로 사찰 입구, 마을, 성문 밖, 경계 길가 등입니다.
* 장생과 불회사 석장승 *
「장생」이란 문자가 문헌상으로 나타난 가장 오래인 것은 신라 경덕왕 18년(759년)으로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에 「이때가 건원 2년인데 특별히 교지를 내려 장생표주를 세우게 했는데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是以乾元二年 特敎植 長生標柱 至今存焉)」이란 기록이 보입니다.
불회사 석장생의 제작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불회사의 인근에 있는 운흥사 석장생(하원당장군)의 조각 형태와 그 수법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운흥사 석장생이 만들어진 강희 58년(1719년)을 전후하여 만든 것으로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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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회사(나주) 기본 정보
나주 반남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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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반남 고분군 소개
대안리의 동쪽에 위치한 자미산(紫薇山)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에 분포되어 있는 12기의 삼국시대(三國時代) 고분입니다.
1917~1918년과 1938~1939년 동안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조사된 이래 현재까지 독무덤 ·돌방무덤[石室墳] 등 12기의 고분이 발굴되거나 그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4·8·9호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5·6·10·11·12호는 인멸되었습니다.
4호분은 1978년에 도로공사 과정에서 노출되어 전남대에 재직 중이던 최몽룡교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7세기대의 백제(百濟) 석실분(石室墳)으로 밝혀졌고 석실은 전남대학교에 이전 복원되었습니다.
3호분과 9호분은 1918년 일본인 야쓰이(谷井濟一)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8호분에서는 4기의 옹관(甕棺)과 단지·뚜껑·대접·유리옥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9호분은 대안리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큰칼·구리팔찌·유리구슬·토기 등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대안리고분군의 분구 형태는 원형·방대형·사다리꼴 등이고, 규모는 길이 11m 내외(2호분)에서 47m 내외(9호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 마한 토착세력의 무덤으로 추정 *
지금까지 1·2·3·4·7·8·9호분이 정비복원되었는데, 최근에 복원된 1·2·3호분에서는 분구 주변에서 모두 도랑이 확인됨에 따라 대안리고분군을 비롯한 반남고분군(潘南古墳群)의 다른 고분들도 대부분 도랑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분구 주변의 도랑은 묘역구분·배수·채토 등 다양한 용도에서 만들어졌다.
내부 매장시설은 4호분과 같이 석실인 경우도 있지만, 나머지 고분들은 여러 개의 옹관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목관(木棺)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고 판단됩니다.
대안리 고분군에는 4호분과 같이 7세기대의 백제 석실분이 섞여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고분들은 백제의 영산강유역 진출 이전에 자리잡고 있던 마한(馬韓) 토착 세력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중심연대는 반남고분군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4세기말 ~ 5세기초로 판단됩니다.
* 유물상으로 주목되는 4호분과 9호분 *
12기의 고분 중 매장 주체부의 구조나 유물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4호분과 9호분입니다.
4호분은 파괴된 돌방무덤으로 부여 지역에서 보이는 백제 말기 형식인 판축조평천장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습된 껴묻거리에 회색 연질의 긴목병, 적갈색 바리모양토기, 은장도자루, 관고리 및 널못 등이 있는데 이 중 긴목병은 출토예가 많지 않은 희귀한 것입니다.
9호분은 그 규모가 동서 44.3m, 남북 34.94m, 높이 8.41~7.35m에 이르는 대형 방대형고분입니다.
분구 정상의 평탄면에 9기의 독이 매장되어 있어서 12기의 독이 매장된 신촌리 9호분과 아울러 반남면 고분군 중 최대 고분에 속합니다.
또, 분구의 규모가 장대할 뿐만 아니라, 껴묻거리가 많고 다양한 점도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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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반남 고분군 기본 정보
나주 금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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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성관 소개
이 건물은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매월 1일과 15일에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입니다.
초창은 성종 6~10년(1475~1479)사이에 나주목사로 재직한 이 유인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4칸, 팔각지붕의 320.66m²(97평) 건물로 전국의 객사 건물 중 그 규모가 가장 웅장하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 건물로 사용해오면서 원형이 파괴되어 1976년에서1977년 사이 완전해체 복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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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성관 기본 정보
나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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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향교 소개
1407년(태종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이 향교에는 1701년(숙종 27)에 창건한 계성사(啓聖祠)가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교궁(校宮)의 배치가 다른 향교와는 크게 다른 특색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교궁의 배치는 대성전이 위에 있고 그 밑에 명륜당이 위치하고 있으나,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봉안하는 계성사가 있는 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의 위치가 바뀐 것이 특색입니다.
호남지방의 향교 중 계성사가 있었던 곳으로는 나주향교 이외에 전주향교와 함평향교 등이 있습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신학제 실시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소장 전적 145종 195책 중 필사본인 ≪금성연계방안 錦城蓮桂榜案≫·≪유림안 儒林案≫·≪청금안 靑衿案≫·≪통문 通文≫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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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향교 기본 정보
나주 완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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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완사천 소개
* 물긷는 처녀와 나그네의 전설이 있는 곳, 완사천 *
나주시청 앞 300m 지점 국도 13호선 주변에 있는 완사천은 원래 작은 옹달샘이었는데 택지 조성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샘물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습니다고 하며, 샘과 버들잎, 물긷는 처녀와 나그네가 주제가 되는 전설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고려말부터 조선말까지 나주의 향리들이 기록한 관청일기인 "금성일기" 또는 "나주호 장일기"에 세종 11년(1429) 정월 이안관 전판서 운관사 장득수(張得修)가 혜종의 소상과 진영을 옥교자에 모시고 2월 6일 역참을 통해서 서울로 떠났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 혜종사가 훼철된 것으로 보입니다.
* 태조 왕건과 완사천의 관계 *
완사천은 고려 태조와 관련된 유적으로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기 전 이곳 나주를 몇 차례 내려오는데 903~914년 사이 10여년동안 네 차례나 됩니다.
왕건은 이곳 완사천에서 당시 17세의 장화왕후를 만나 인연을 맺고 제2대 혜종을 낳습니다.
한편 이곳 완사천 일대에는 흥룡사와 헤종사란 사당이 있었습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흥룡사는 금강진(현 완사천 일대) 북쪽에 있는데, 태조 왕건이 장화왕후와 인연을 맺을 때 장화왕후의 오씨가문이 대대로 살았던 터로, 혜종을 낳은 인연으로 건찰된 것이라 합니다.
한편 혜종사도 역시 『신증동국여지승람』에「혜종사재흥룡사중주인지금사지(惠宗祠在興龍寺中州人至今祀之)」라 조선 중기까지 혜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셔온 곳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하여 뒷날 이곳을 흥룡동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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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완사천 기본 정보
남고문(나주읍성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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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문(나주읍성 남문) 소개
* 나주읍성의 남쪽을 책임지던 곳, 남고문(나주읍성 남문) *
나주읍성(羅州邑城)의 남문(南門)으로 나주시 남내동에 복원되어 있습니다.
1920년 경 일제에 의해 약간의 석축만 남고 완전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1993년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으며 그 후 추녀와 천장이 훼손되어 2005년에 보수하였습니다.
2층으로 된 문루(門樓)로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나주읍성에는 동쪽의 동점문, 서쪽 서성문, 남 남고문, 북의 북망문이 있는데 이중 남고문이 가장 많이 이용되었습니다고 합니다.
* 조선시대의 평산성, 나주읍성 *
나주읍성은 대부분의 조선시대 읍성과 마찬가지로 평지와 구릉을 이용하여 축조한 평산성으로 배후에는 금성산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체 성벽의 크기를 복원해 보면 둘레가 3.679m 면적은 974.390㎡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이 훼철되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성곽의 형태는 타원형입니다.
현존하는 유구를 살펴보면, 먼저 서벽(西壁)의 경우는 교동일대에 남아 있는데 민가의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 중 교동 67번지 부근이 비교적 잘 남아있습니다.
성돌 크기는 길이 19m, 높이 90~240cm로 성벽의 아랫부분을 1X1m 크기의 자연석을 겉면만 치석하여 ‘잔돌 끼움 방식’방식에 의해 쌓아 올렸다.
서문지에서 북벽까지는 잔존유구가 인되지 않습니다.
북벽(北壁)의 잔존유구는 산정동 1-5번지 부근에 길이 15m의 석축열 일단과 성북동 33번지 앞에서 나주 중앙초등학교 뒤편까지 약 50m에 걸쳐 성돌이 흩어져 있습니다.
동벽은 중앙동 천변(128-12번지) 부근에 석축의 일부가 확인됩니다.
남벽의 경우 현재로는 남아 있는 유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며 다만 남문지(남외동 2-20번지)는 사적지로 지정되어 남문(南顧門)을 1993년 성벽을 제외하고 복원하였으며, 동점문은 2005년에 복원하였습니다.
※ 나주읍성 사대문 명칭 - 동)동점문, 서)서성문, 남)남고문, 북)북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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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문(나주읍성 남문) 기본 정보
지금까지 전남 나주 가볼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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