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대구 가볼만한곳
안녕하세요? 봄바람이 살랑이며, 3월의 따스한 햇살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문턱으로 발을 내딛는 이 순간, 우리는 새로운 시작과 함께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완벽한 여행지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봄날의 따뜻함을 만끽할 수 있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보석 같은 여행지들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이곳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들입니다. 봄의 기운을 만끽하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준비가 되셨나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저와 함께 떠나볼까요?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드릴 내용은 대구 가볼만한 곳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녹동서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녹동서원 소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룩리 삼정산 기숡에 자리한 녹동서원은 모하당 김충선 장군을 배향하는 서원입니다.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향도 유림들이 상소하여 정조 15년인 1791년에 건립하였습니다.
그 후 고종 5년,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가 1914년 다시 복원하였으나 후손이 늘어남에 따라 규모가 협소하여 국고의 지원을 받아 1972년 지금의 장소로 이축과 동시에 증축하였습니다.
서원경내는 향양문을 비롯한 녹동서원,녹동사.충절관을 비롯해 깁공의 묘소도 서원 뒤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녹동서원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www.dskjfriend.kr/
운영 시간 하절기(3~10월) 10:00~18:00
동절기(11~2월) 10:00~17:00
주차시설 있음(달성한일우호관)
쉬는 날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추석 당일
육신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육신사 소개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으로 일컫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선생만을 모셔 제사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기일에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로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고 전해진다.
숙종 17년인 1691년 낙빈사를 지어 이들을 봉안하고 제사 지냈으나, 서원 철페령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함께 철거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위패를 다시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부터 1975년 사이 [충효 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재건하였고,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건물을 복원하였습니다.
이후 향사는 육신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육신사에는 숭정당, 숭절당, 사랑채, 외삼문, 내삼문 등의 건물과 보물 제54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과 태고정 안채 등이 남아 있습니다.
달성 태고정은 1479년 박일산이 태건립한 것으로 종택에 딸린 별당 건물입니다.
이 밖에 사육신 육각비를 비롯하여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박준규 국회의장의 기념 비석, 헌성 방명록 비, 제13·14·15대 국회 의장 송산 박준규 생가 터 표석 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묘골 아름 마을 입구에는 사육신 기념관이 있습니다.
육신사 기본 정보
운영 시간 09:00~18:00(12:00~13:00 점심시간)
주차시설 있음(무료)
쉬는 날 매주 월요일, 화요일 / 국경일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소개
높이 10m, 길이 60m의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절벽에 수천여 그루의 측백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군락지입니다.
도동의 측백나무 숲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다.
2011년 11월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었지만 상징적으로 이곳 측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제1호인 것은 이 나무가 남방 한계를 알려주기에 식물학상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도동 향산에 살고 있는 측백나무는 바위틈에서 살고 있어 가까이에서 보면 안타까울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동의 측백나무를 바라보면 이 나무가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6년 실태조사에 의하면 도동 측백나무 숲 나무 개체 수는 성목 1,232개, 치수 191개 등 모두 1,423개로 조사됐습니다.
전수조사를 통한 정확한 개체 수 파악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2007년부터 매년 도동에서는 측백나무 숲을 지키기 위해 기원제를 지내고 있으며, 2018년 기원제에서는 대구시 무형문화재 공산농요보존회 회원들이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측백나무숲과 인접하여 위치한 관음사와 인근 측백문화마을의 보호수인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이룬 연리지나무도 측백나무와 같이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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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기본 정보
대구부수성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구부수성비 소개
대구부수성비는 1869년(고종 6) 8월에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한 김세호가 1870년에 대구부성을 보수하고 그 사실을 기리고자 세운 비입니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도 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쌓았습니다.
그 후 성이 오래되어 성벽이 훼손되었지만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김세호가 1870년(고종 7) 봄에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11월에 공사를 마치고 이러한 과정을 대구부수성비에 기록하였습니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입니다.
비문에는 공사에 관한 내용과 유공자에게 상을 내린 일이 적혀 있습니다.
관찰사 김세호가 직접 비문을 짓고, 당시 공사 책임관이었던 최석로가 글씨를 썼다.
광무 10년(1906) 대구부성이 헐리면서 갈 곳을 잃었습니다가 1932년 대구향교 경내로 옮겨 놓았고, 1980년 영남제일관을 재현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대구부수성비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인 영영축성비와 함께 서 있습니다.
대구부수성비 기본 정보
영영축성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영영축성비 소개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 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입니다.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이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 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모습입니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24보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습니다.
석성의 공사 기간은 6개월이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합니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습니다 합니다.
경상도 관찰사였던 민응수가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3년(1737) 대구 남문 밖 관덕정지에 세워두었으며, 민응수가 비문을 짓고, 백상휘가 글씨를 썼다.
1906년(고종 10) 당시 대구 군수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헐고 도로를 만들면서 옛 달성군청(현재 대구백화점)에 옮겼다가, 이를 다시 1932년에 대구향교에 이전 보관되어 오다가 1980년에 현재의 위치(영남제일관)로 옮겨져 대구부수성비와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영영축성비 기본 정보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소개
대구의 신천이 흐르는 둔치 주변 이서공원에 한 채의 비각 안에 서 있는 3기의 비입니다.
왼쪽에 있는 것은 이공제비로, 대구판관을 지낸 이서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것입니다.
당시 대구는 하천이 중심부로 흘러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조선 정조 즉위년(1776) 대구판관으로 부임해 온 이서는 주민들의 어려움을 알고 1778년 자기의 재산을 털어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홍수의 피해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새로 만든 냇물을 신천이라 부르고, 제방의 명칭도 이공제라 한 후 정조 21년(1797)에 이 비를 세워 그를 기렸다.
원래 수성교 서쪽 제방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비는 옆의 이공제비가 초라하여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는 의미로 순조 5년(1805)에 다시 세운 것입니다.
오른쪽에 서 있는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는 광무 3년(1899)에 세운 비로, 고종 때 대구수령으로 있던 이범선의 공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1898년 큰 홍수가 일어나 이공제의 하류 부분이 파손되어 대구읍성이 위험하게 되자, 이범선은 빠른 기간에 보수공사를 완성하여 주민들의 근심을 덜어주었습니다.
이에 보답하고자 광무 3년(1899) 이곳 주민들이 비를 세웠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덕수이씨 종친회 주관으로 향사 지내고 있습니다.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기본 정보
대구 고모령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구 고모령비 소개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습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습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 어린 인생 고개 몇 고개이더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서린 하소 적어 가면서 오늘 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이라는 3개의 산봉우리가 되었고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렸고 망우공원에서 파크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대구 고모령비 기본 정보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넘기며,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번 여행에서의 소중한 추억들이 영원히 남게 됩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린 숨겨진 보석 같은 여행지들이 여러분의 봄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삶의 활력을 느끼며,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취했기를 바랍니다. 봄날의 여행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다음 여행지에서도 또 다른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다음 여행 포스트에서 또 만나요. :) 지금까지 3월 대구 가볼만한곳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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