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 가볼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서울 성북의 아름다운 자연과 흥미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베스트 10 관광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 순위를 참고하여 선정되었으며, 다양한 즐길 거리와 볼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이 목록을 참고하시어, 특별하고 의미 있는 여행을 즐겨보세요. 행복한 추억을 만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개운사(서울)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개운사(서울) 소개
안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개운사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한국 불교 개혁의 근원지이고, 현재는 김포에 위치하고 있지만 불교 교육의 근본도량인 중앙승가대학이 있던 곳입니다.
이 절은 조선 초 태조 5년(1396)에 왕사(王師)인 무학대사가 동대문 밖 5리 정도되는 안암산 기슭, 현재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부근에 절을 짓고 영도사(永導寺)라고 하였습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후 정조 3년(1779) 5월에 정조의 후 궁 원빈(元嬪)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영도사 자리에 묘소를 정하고, 명인원(明仁圓)이 세워지자 인파당(人波堂) 축홍(竺洪)스님이 영도사를 동쪽으로 몇 리 떨어진 현재의 자리에 절을 옮겨 지었습니다고 하였으나 '사기(寺記)'라는 문 헌에는 영조 6년(1730)에 영도사가 이전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영도사가 개운사로 이름을 바꾼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개운사는 20세기 이후에 한국 교육불사와 불교의 진보적인 운동을 주도해 왔다.
1926년 근대 불교의 대석학이었던 박한영 스님이 머물었고, 이절의 암자인 대원암에 탄허(呑虛)스님이 머물면서 역경(譯經) 사업에종사 하였습니다.
이 절은 현재 조계종이지만 최근까지 태고종에서 관리하였으므로 1955년에 대처승 주최로 전국포교사대회(全國布敎師大會)를 개최 하기도 하였습니다.
1981년부터 중앙승가대학이 이곳을 교육도량으로 사용하면서 현대사 속에서의 개운사 전통을 꽃피우는 계기가 마련 되었습니다.
조선말 고종 10년(1873)에 명부전을 세우고 나서 7년 후인 1880년에는 이벽송(李碧松)대사가 대웅전을 중건하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출처: 개운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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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사(서울) 기본 정보
흥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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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소개
북한산 서쪽 기슭의 정릉 입구에 있는 신흥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씨의 능인 정릉의 조포사(제사에 쓰는 두부를 만드는 절)였다.
정릉이 이장되면서 몇번 옮겨지다가 정조 18년(1794년)부터 지금의 자리에 정착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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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기본 정보
성락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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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원(서울) 소개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물이 흐르는 경치에 따라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 지형으로 앞뜰, 안뜰, 바깥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뜰은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쌍류동천과 안뜰 앞을 막아 아늑하게 감싸 만든 용두가산이 있습니다.
물줄기 속 암벽에 행서체로 새긴 ‘쌍류동천’이란 글은 성락원의 자맥을 보호하는 뜻도 있습니다고 합니다.
또한 쌍류동천 주위와 용두가산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안뜰과 성락원 바깥을 가려주는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안뜰은 영벽지와 폭포가 있으며 바깥뜰은 송석과 연못이 있는 지역입니다.
서쪽 아래 지역에 늪이 있고, 북쪽에는 물길을 파서 인공폭포를 만들었습니다.
늪의 서쪽 암벽에 ‘장빙가(檣氷家)’라고 새긴 글씨는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것입니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는 성락원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 밖에 위치한 몇 안되는 별서정원의 하나로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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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원(서울) 기본 정보
북한산국립공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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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국립공원(서울) 소개
북한산은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총면적(도봉산 포함)은 80.669㎢다.
북한산의 정상은 백운대(835.6m)·인수봉(810.5m)·만경대(799.5m)로 조선시대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최고봉 백운대(白雲臺)와 그 동쪽의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萬景臺, 일명 국망봉)의 세 봉우리가 삼각형의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삼봉산(三峰山, 세봉오리로 이루어진 산), 화산(華山, 꽃이 만발하는 산) 또는 부아악(負兒岳,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 등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북한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부터라고 추정됩니다.
※ 백운대는 암릉구간이 많아 등산화 착용을 권장함.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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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국립공원(서울)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bukhan.knps.or.kr
주차시설 가능 (정릉주차장, 북한산성제1주차장, 북한산성제2주차장)
쉬는 날 ※ 기상여건에 따라 통제 가능
서울 정릉(신덕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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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릉(신덕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소개
정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후비 신덕왕후 강 씨의 묘소입니다.
태조는 고려의 풍습대로 향리와 서울에 각각 부인을 두고 있었는데, 강 씨는 서울에 있는 부인이었습니다.
고향에 둔 부인 한 씨는 태조 등극 전에 죽었고, 등극과 더불어 왕후의 자리에 앉은 것은 현비 강 씨로서 방번, 방석 두 형제를 낳았습니다.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 의해 강 씨 소생의 두 왕자가 죽자, 태조는 정사에 뜻을 잃고 태상당으로 있으면서 자주 정릉에 가서 불공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 후 능역의 광대함이 의정부에서 논란이 되었고, 태조가 죽은 뒤로는 정릉에 대한 박대가 노골화하였습니다가, 태종의 뜻대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습니다.
이 묘소는 단릉의 형식으로, 능침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를 배치하였습니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이 조성 당시의 것이며 나머지 석물은 현종 대에 다시 조성하였습니다.
장명등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
능침 아래에는 홍살문,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비각이 있고, 일반 조선왕릉과 달리 직선 축이 아닌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진입 공간에 금천교의 모습은 우리나라 자연형 석교의 조형 기술을 볼 수 있으며 재실 양옆으로 서 있는 보호수 느티나무도 살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수도권 지하철 우이 신설 정릉역 2번 출구에서 600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서울 정릉(신덕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s://royaltombs.cha.go.kr
운영 시간 * 2~5월/9~10월 06:00~18:00
* 6~8월 06:00~18:30
* 11~1월 06:30~17:30
※ 매표마감은 관람시간 1시간 전까지
주차시설 주차가능(9대)
쉬는 날 매주 월요일
길상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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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서울) 소개
서울 성북동 중턱에 위치한 길상사는 예전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로, 대원각 주인이었던 길상화 김영한 님에게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던 대지와 건물을 시주받아 1997년에 개원하였습니다.
역사는 짧지만 서울 도심권에 위치하여 내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쉽게 들러볼 수 있는 곳이며, 사찰 체험, 불도 체험, 수련회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도심문화공간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길상사에는 대중들의 정진 수행공간인 ‘길상선원’과 ‘침묵의 집’이 있습니다.
길상선원은 일반인들을 위한 상설 시민선방으로 방부가 허락된 사람들만 이용이 가능하며, 침묵의 집은 참선은 물론 음악을 통한 명상 등을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정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무소유, 영혼의 모음, 말과 침묵, 물소리 바람 소리,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을 저술하신 법정 스님이 계신 곳으로도 유명하다.
파리에 길상사 분원이 있습니다.
또한 1997년 세워진 길상사는 역사는 짧지만 개원법회가 있던 날, 김수환 추기경이 개원 축사를 하였고, 2005년 5월 15일 부처님 오신 날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수녀님들을 초대하여 ‘길상 음악회’를 통해 불교와 천주교의 종교를 뛰어넘은 만남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교수가 직접 조각한 관세음 보살상과 기독교 신자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기증한 7층 석탑을 보유하고 있어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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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서울) 기본 정보
북악산 숙정문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북악산 숙정문 소개
숙정문은 북한산 동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 5년(1396)에 완공되었는데 처음에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합니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 문의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그리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평소에는 닫아두었기 때문에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은 나있지 않다.
1976년 북안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문루를 짓고 ‘숙정문’이란 편액을 달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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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숙정문 기본 정보
운영 시간 - 3~10월 09:00~18:00 (입장마감 16:00)
- 11~2월 10:00~17:00 (입장마감 15:00)
주차시설 없음
쉬는 날 매주 월요일
최순우 옛집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최순우 옛집 소개
최순우 옛집은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고 알린 혜곡 최순우(미술사학자,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1916~1984)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하실 때까지 사시던 집입니다.
1930년대 근대 한옥인 기념관은 시민들의 성금으로 매입하여 보전된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1호(등록문화재)로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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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www.choisunu.com
운영 시간 10:00 ~ 16:00 *행사 별 상이하므로 상세 내용 홈페이지 참고
* 단체 20인 이상 관람 시는 사전예약
쉬는 날 일요일, 월요일, 추석 당일, 동절기(12~3월)
만해한용운심우장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만해한용운심우장 소개
이 집은 3.1운동 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자 님의 침묵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과 양옥의 관리사 그리고 만해가 직접 심었습니다는 향나무 등이 있습니다.
심우장은 전체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은 집으로, 이곳에는 가운데 대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 오른쪽에 부엌이 있습니다.
부엌 뒤로는 식사 준비는 하는 공간인 천마루방이 있습니다.
한용운의 서재였던 온돌방에는 심우장이라는 현관이 걸려있는데, 이는 근대의 대표적인 서화가인 위창 오세창이 쓴 것입니다.
이 이름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입니다.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일대는 1930년대 서울이 확장되면서 주거지로 개발되었는데, 이 집은 당시의 여느 집과는 다르게 검소하고 소박한 구성을 보여준다.
한용운은 조선의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승려이자 조국의 독립에 힘쓴 독립운동가이며 근대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이었습니다.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그의 이 같은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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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한용운심우장 기본 정보
홈페이지 성북구 문화관광 http://www.sb.go.kr/tour/PageLink.do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운영 시간 09:00~18:00
쉬는 날 연중무휴
상허이태준가옥(수연산방)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상허이태준가옥(수연산방) 소개
이곳은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한 곳입니다.
이태준은 이곳의 당호를 [수연산방]이라 하고, 달밤, 돌다리, 코스모스 피는 정원, 황진이, 왕자 호동 등 많은 문학 작품 집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의 수필 무서록에는 이 집을 지은 과정과 집터의 내력 등이 쓰여 있습니다.
이 집은 건물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 건넌방, 오른쪽에 안방을 두어 T자형을 이루고 아담하면서도 화려하게 지어졌다.
이 건물의 안방 앞에는 누마루를 두고 그 뒤편에는 부엌과 화장실을 두어서, 공간의 기능을 집약시킨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누마루는 작은 규모의 집에서는 보기 드물게 섬세하고 화려하며 사랑방의 기능을 안채에 집약시켰다.
건넌방 앞에 놓인 툇마루는 건넌방보다 바닥을 약간 높이고 아(亞)자 난간을 둘러서 세심하게 고려한 공간임을 느끼게 합니다.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곳은 이태준 선생의 외 종손녀가 당호인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하차 후 2112번, 1111번 버스 승차 후 [이태준가옥]에서 하차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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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이태준가옥(수연산방)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sooyeonsanbang1998
운영 시간 평일 11:30~18:00
주말 11:30~22:00 (18:00~19:00 브레이크타임)
주차시설 있음
쉬는 날 매주 월요일
지금까지 서울 성북 가볼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