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 가볼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광주 동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다채로운 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베스트 10 관광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목록은 한국관광공사의 인기 순위를 참고하여 선정되었으며, 다양한 즐길 거리와 매력적인 명소들이 가득합니다.
가족,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이 목록을 참고하시어, 행복한 추억을 쌓으세요. 멋진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무등산 주상절리대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무등산 주상절리대 소개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용연동 일대 무등산에 있는 육각형 모양의 기둥 바위가 늘어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상절리는 용암(석영안산암질)이 지표부근에서 냉각되면서 물리적 풍화에 의해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 중에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기둥모양인 것을 말합니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약 7천만 년 전(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의 산물로 형성된 것으로 입석대와 서석대 그리고 규봉에 있으며, 입석대와 서석대에 있는 절리대의 돌기둥 하나의 크기가 지금까지 남한에서 보고된 것 중 가장 커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입석대, 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지만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정상을 중심으로 산비탈에 있는 너덜겅은 이러한 돌기둥이 무너져 쌓인 것입니다.
서있는 바위나, 너덜겅들은 암석의 생성과 풍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지구의 기후환경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희귀한 자연유적이므로 학술적·경관적 가치가 매우 크며 빼어난 지질경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형자원들은 단순히 주상절리대, 너덜지대라는 인식 이외에 무등산 일대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등산의 주상절리대와 너덜지대를 신앙의 대상으로, 때로는 종교적 수행을 하는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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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주상절리대 기본 정보
약사암(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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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광주) 소개
약사암은 증심사의 부속 암자로 새인봉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도윤(道允)이 847년(문성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였습니다고 전하는데 당시에는 인왕사(人王寺)라고 했습니다가, 고려 예종(1105~1122) 때 국사 혜조(慧照)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약사암으로 바꾸었습니다.
조선시대인 1856년(철종 7) 3월에 성암(性庵)이 약사전을 중수하였고, 1905년 9월에 선주(善周)가 관청의 도움과 시주로 중건했습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주지 석담(石潭)이 법당과 요사채 등을 중건·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약사사의 볼거리와 문화재 *약사암에 보존되어 있는 유물로 석조여래좌상(보물)과 3층석탑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유물이 9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이 절의 역사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현재 약사암에는 대웅전, 운림당, 운림서원, 강원, 일주문 등이 있으나, 모두 1970년 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의 건물입니다.
대웅전에는 독성탱화·칠성탱화·산신탱화·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는데 독성탱화는 1912년에 그린 것이며 칠성탱화와 산신탱화도 이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신중탱화는 근래의 것입니다.
[문화재정보]지정종목 : 문화재자료지정번호 : 광주문화재자료지정연도 : 1984년 2월 17일시대 : 신라종류 : 사찰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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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광주) 기본 정보
운영 시간 일출~일몰
주차시설 있음
쉬는 날 연중무휴
증심사(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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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심사(광주) 소개
증심사는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불교도량으로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때 고승 철감선사 도윤이 9세기 중엽에 세운 절로 고려 선종 때(1094년) 혜소국사가 고쳐 짓고 조선 세종 때 김방이 삼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의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석경·수장·도광의 3대 선사가 4창했습니다고 합니다.
그 후 신도들의 정성으로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6 ·25 전쟁 때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가 1970년에야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복구되었습니다.
증심사의 유물로는 오백전과 비로전(사성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신라 말기의 석탑인 증심사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범종각, 각 층의 4면에 범자가 새겨진 범자칠층석탑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특히 오백전은 무등산에 남아 있는 사찰 건물들 중 현재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세종 25년)의 건물로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과 계통을 같이 하는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심포 양식으로 그 희귀성이 돋보입니다.
이에 1986년 11월 1일 광주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사찰입니다.
다양한 템플스테이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체험프로그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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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심사(광주) 기본 정보
광주 예술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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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예술의 거리 소개
서울의 대학로와 인사동 거리, 부산의 Piff 거리 등 지방마다 도시의 특색을 살린 거리가 존재합니다.
광주광역시를 대표하는 거리는 바로 광주 예술의 거리입니다.
예술의 거리는 호남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예향 광주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조성됐습니다.
현재 동호인의 편의도모를 위해 서화, 도자기, 공예품 등 이 지방 예술의 상징적 작품을 집산하여 전시, 판매하고 있으며, 한국화, 서예, 남도창을 중심으로 한 남도예술의 진수를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광주 동부 경찰서 앞에서 중앙초등학교 뒤편 사거리에 이르는 이곳을 두루 돌아보는데 구경만 하면 1시간 정도, 매장에 들어가서 감상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광주가 초행이면 꼭 들러볼 만한 곳입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다양한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고 한 달에 한 번 남도문화예술진흥회가 주축이 된 음악회, 빛의 축제, 언더그라운드 공연, 캐릭터 문화 상품전, 빛의 축제 등을 펼치며 예술의 거리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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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예술의 거리 기본 정보
너릿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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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공원 소개
광주광역시 동구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을 연결시키는 너릿재터널 입구의 화순 쪽 도로변에 조성된 작은 공원입니다.
1971년 터널이 개통 되기 전까지만 해도 너릿재는 큰 눈이 오면 한 달이 넘게 길이 끊기곤 했고, 그 이전에는 대낮에도 산적이 나오는 험한 고개였다.
또 갑오농민전쟁 때에는 농민군들이 무더기로 처형되고,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과 국군들이 대치했던 곳이었습니다.
『여지도서』(화순)에 "북쪽으로 광주와의 경계에 있는 판치(板峙)까지 가는 길이 9리입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동지지』에 "판치는 북쪽 10리에 있으며, 광주와 경계입니다"라고 수록되어있습니다.
'판(板)'은 판판하고 넓게 켠 나뭇조각인 널빤지를 의미하는데, 치(峙)는 언덕이나 재(고개)를 를 뜻하는데 널재 또는 널의 재에서 너릿재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판치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너릿재 터널을 오가는 이들의 휴식처인 너릿재 공원에는 1951년 4월 너릿재에서 싸우다 산화 한 무명용사들의 묘지와 1950년 10월 북한군의 습격으로 숨진 당시 화순경찰서 소속 경찰관 23위를 모신 순국경찰묘지가 있으며 충혼불망 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광주 쪽의 너릿재터널 입구에도 시비(詩碑)와 쉼터 등이 설치된 만남의 광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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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공원 기본 정보
운영 시간 24시간
주차시설 주차 가능
쉬는 날 연중무휴
무등산국립공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무등산국립공원 소개
무등산은 광주와 담양군·화순군과 경계에 있는 산으로 무악(武岳)·무진악(武珍岳)·서석산(瑞石山)·입석산(立石山)이라고도 합니다.
높이를 헤아리기 어렵고 견줄 상대가 없어 등급조차 매길 수 없다는 산이 무등산입니다.
해발 1,186.8m로 산세가 유순하고 둥그스름한 모습입니다.
산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를 ‘정상 3봉’이라고도 합니다.
정상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규봉, 입석대, 서석대 등의 이름난 기암괴석과 증심사, 원효사, 약사사 등의 사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등산의 가을철은 규봉암의 단풍과 장불재, 백마능선의 억새풀이 절경을 이루고 겨울에는 설화와 빙화가 일품입니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이후 40년 만에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산 아래에는 각종 놀이시설 및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또한 옛 궁궐의 진상품이었던 무등산 수박의 뛰어난 향을 가진 춘설차 등도 무등산의 매력입니다.
산기슭의 증심사를 기점으로 출발하여 두어 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산의 동북쪽으로 관광 도로가 개설되어 산허리의 원효계곡까지 자동차로 거의 30분 거리이며, 여기서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오르면 됩니다.
공원면적은 30.23㎢입니다.
(광주 27.03㎢ / 전남 3.20㎢)무등산에는 증심사(證心寺)와 원효사, 천문사(天門寺)·미력사(彌力寺)·동국사(東國寺)·보덕사(普德寺)·백운암(白雲庵)·약사암(藥師庵) 등의 사찰이 있어 등반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증심사는 통일신라시대 철감국사(哲鑑國師) 도윤(道允)이 창건한 절로서, 이곳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5층 석탑·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 등이 있으며, 증심사의 말사인 약사암에는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 있습니다.
원효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절인데, 증심사와 함께 한국전쟁 당시 때 공비 토벌작전으로 소실되었습니다가 복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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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국립공원 기본 정보
충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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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로 소개
서울에 명동이 있습니다면 광주에는 충장로가 있습니다.
도심이 커지면서 곳곳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번화한 새 거리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광주의 중심은 충장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충장로는 읍성시대에 남문과 북문을 잇는 광주의 대표적인 남북대로였고 성안에 있어서 시내라고 불렀습니다.
충장로에 상가가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 직후인 1911년 일본인이 현 산업은행 건너편에 ‘여목’이라는 상호로 일용 잡화점을 낸 것이 효시입니다.
그 후 충장로 1가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상가가 들어섰고 일본인들이 충장로의 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구 도청 자리에 일제 총독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충장로’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김덕령의 시호를 딴 것으로 충장로의 최초 가로등은 석유 등잔불이었습니다고 합니다.
일찍이 양장, 양복, 요식업, 서비스업 등이 집약되어 있어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고, 당대에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던 충장로는 자연스레 유행의거리, 젊음의거리로 불렸다.
충장로를 이야기 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 것은 ‘우다방’입니다.
‘우다방’은 충장로가 가장 번성기를 누렸던 7~80년대에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우체국을 그 시절에 유행했던 다방에 빗대서 붙인 이름입니다.
1963년에 완공되어 그 당시에는 드물게 냉, 난방을 갖춘 대형 건물이었던 우체국은 가난한 연인들이나 학생들에게 둘도 없는 만남의 장소였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위 군중들의 예비 집결지, 정보 교류처, 대피처로 광주의 역사와 함께했던 ‘우다방’은 지금도 자신의 주장을 알리려는 시민들이나 각종단체들이 행사나 집회를 여는 곳입니다.
2004년부터 매년 10월, 광주를 대표하는 번화가 충장로의 특징을 살린 추억의 충장축제가 열린다.
축제의 가 장 큰 볼거리인 ‘충장 월드퍼레이드'에는 광주 13개 동에서 서로 다른 테마로 퍼레이드에 참석하며 경연 퍼레이드, 영화 콘셉트 퍼레이드, 아시아 국가 퍼레이드 등 다양한 퍼레이드가 쉴 새 없이 진행됩니다.
또한, 70~80년대 충장로의 모습을 재현한 추억의 테마거리도 조성됩니다.
옛날 다방에서 차를 마시거나 흑백사진관에서 멋진 흑 백사진을 찍는 등 MZ세대를 비롯한 다양한 세대가 즐거운 레트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축제 본연의 특성인 놀이성, 일탈을 통한 해방감, 공동체로서의 대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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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로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s://tour.gwangju.go.kr/home/main.cs
운영 시간 ※ 각 브랜드별, 매장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 요망
주차시설 있음 (민영 주차장)
쉬는 날 매장별로 차이가 있음
금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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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 소개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2.3㎞의 길로 금남로 1~5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중 금남로 1가의 옛 전남도청에서 옛 광주 은행 사거리 518m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2011년 8월 30일 광주시에 의하여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로 지정되었습니다.
금남로는 광주시민이 계엄군에 맞서 5·18민중항쟁 기간 중 연일 격렬하게 저항했던 항쟁의 거리다.
5월 18일 카톨릭센터 앞에서 최초의 학생 연좌시위가 있었으며 5월 19일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5월 20일 저녁에는 택시를 중심으로 100대 이상의 각종 차량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있었습니다.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전까지 30여 만 광주시민이 매일 운집, 군사독재 저지와 민주화를 촉구했던 금남로는 5·18민중 항쟁을 상징하는 거리다.
이후에도 항쟁의 진실을 밝히려는 투쟁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카톨릭센터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시민 집회가 계속 열렸다.
지금도 광주에서 진행되는 행사나 집회, 축제 등은 모두 금남로를 거쳐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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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 기본 정보
5·18 민주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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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광장 소개
5·18 민주광장은 광주광역시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분수대 광장을 말합니다.
1980년 5월 광주광역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을 기념하기 ‘5·18 민주광장’으로 명명한 곳입니다.
광장에는 당시의 분수대, 상무관, 시계탑이 상징으로 남아있고 2005년에 건립된 민주의 종각이 있으며 5·18 기념일과 광복절에 타종합니다.
당시 전남도청으로 사용된 옛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건설되었는데 현재는 복원되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이용되며 5·18 사적지로 1996년부터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80년 5월 14일 전남대에서 전남도청 앞 광장까지 행진한 전남대 학생들이 조선대 학생, 시민들과 합세, 이곳에서 민족민주대성회를 개최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습니다.
민족민주 대성회는 3일간 계속되면서 시국선언문이 발표되고, 민주화를 촉구하는 자유발언 등이 진행됐습니다.
특히 5월 16일에는 경찰의 협조하에 야간횃불집회를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등 광주민주화운동의 산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5월 21일 계엄군 철수 이후에는 이곳에서 민주화 투쟁 결의 등 각종 궐기대회와 시민집회가 열렸다.
현재는 5·18 관련 최대 행사인 전야제가 매년 이곳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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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광장 기본 정보
오지호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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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생가 소개
이곳은 서양화의 대가 오지호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근무 중이던 1954년부터 1982년 타계할 때까지 30여 년간 살던 집입니다.
원래는 100여 년 전의 건축물이었으나 퇴락하자 1986년에 전면적인 보수작업을 했습니다.
오지호(1905~1982)는 인상주의의 회화 양식을 받아들여 토착화시킨 화가입니다.
선생의 본명은 오점수인데, 지호라는 이름은 선생께서 그림에 싸인할 때 사용하던 호로 본명보다 더 많이 알려져 지금은 일반적으로 오지호라고 부른다.
화순 동복 출신이며 휘문고보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도일유학 유화가인 고의동과 함께 있었으며 동경 미술학교에 유학했습니다.
1948년 광주에 내려와 정착하였고, 광주 미술계의 자존심이자 한국이 자랑하는 화가 오지호 선생은 한국 서양화단의 개척자이자 국내 인상주의 회화의 거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지호 가옥의 대문을 들어서면 화실로 사용되었던 채광창이 있는 문간채가 있습니다.
안채는 초가집인데 정면 4칸, 측면 1칸의 전후퇴 집으로 우진각지붕입니다.
평면은 1칸 반의 부엌과 1칸씩의 방 3개로 되어 있고, 배면에는 툇마루와 골방이 있습니다.
부엌에는 살창과 찬장을 복원했으며 판장으로 된 문은 옛날 것을 그대로 달았습니다.
부연은 대나무로 엮었습니다.
기단은 막돌허튼층 쌓기의 외벌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전면과 측면에는 네모기둥, 뒷면에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현재의 기둥은 모서리 기둥만을 남기고 원래의 크기 대로 복원되어 있으며, 문은 외짝의 띠살문입니다.
앞마루도 우물 마루를 살리기 위해 부분적으로 보수하였습니다.
방형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납도리를 결구하였고, 가구는 고주위에 대량을 걸친 뒤 동자주, 종량, 종도리를 차례로 올려놓은 일반적인 구조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화실은 6평 남짓한 크기로 북쪽으로 채광창이 있고, 장마루와 맞배지붕을 한 유럽 스타일의 화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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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생가 기본 정보
지금까지 광주 동 가볼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