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 가볼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전북 정읍에서 꼭 가봐야 할 베스트 10 장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 순위를 참고하여 선정되었으며, 다양한 매력적인 명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준비하시는데 참고하시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내장산국립공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내장산국립공원 소개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 하여 붙여진 이름이 내장산[內藏山]입니다.
가을이면 온통 선홍빛 단풍으로 지천을 물들이는 내장산은 찾는 이의 가슴에 진한 추억을 남기는 ‘호남의 금강’입니다.
불타는 단풍 터널과 도덕폭포, 금선폭포가 이루어 내는 황홀경은 단풍 비경의 대명사로 손색이 없다.
해마다 단풍 천지를 이루는 가을뿐만 아니라 봄에는 철쭉과 벚꽃, 여름에는 짙고 무성한 녹음으로, 겨울에는 바위 절벽의 멋진 비경과 아름다운 설경, 그리고 사계절 내내 갖가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오가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내장산국립공원은 ‘호남의 5대 명산’인 내장산을 비롯하여 남쪽으로 이어진 백암산, 그리고 내장사, 백양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함께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쳐 간 입암산성까지를 포괄하는데, ‘봄 백양, 가을 내장’이라는 말처럼 비경의 연속입니다.
내장산국립공원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naejang.knps.or.kr
운영 시간 연중개방
※ 기상여건에 따라 통제 가능 (홈페이지 참조)
주차시설 가능
쉬는 날 ※ 기상여건에 따라 통제 가능 (홈페이지 참조)
정읍사문화공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정읍사문화공원 소개
정읍사문화공원은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를 주제로 조성된 공원입니다.
이곳에는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린 정읍사 여인의 망부상과 정읍사 노래비, 제례를 지내는 사당, 정읍사 이야기 벽, 사모정, 사랑의 계단, 야외공연장 등이 있습니다.
또한 공원 숲 언덕 위에는 아이들을 위한 유아숲체험원이 마련되어 숲속에서 뛰어놀 수 있는 숲속 잔디 마을과 단풍 숲속 놀이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원 옆에는 편백 산림욕 숲, 정읍시립 미술관, 정읍사 예술회관 있고 시내 인근지역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 많이 찾는 공원이며 정읍사 오솔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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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문화공원 기본 정보
내장사(정읍)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내장사(정읍) 소개
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636년)에 영은 조사가 창건했습니다고 전해지며 한때는 50여 동의 대가람이 들어섰던 때도 있었지만 정유재란과 6.25 때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절은 대부분 그 후에 중건된 것입니다.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절입니다.
내장산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운데에 자리 잡아 주변 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가을철 단풍이 들 무렵의 절 주변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백양사, 방장산, 장성호, 담양호 등이 주변에 있고 주요 문화재로는 내장사 이조 등종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내장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동종으로 고려 후기 동종에서 보이는 일반적 양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내장사가 중건된 후 전라남도 보림사(寶林寺)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일제 말기에는 놋쇠 공출을 피하여 원적암(圓寂庵)에 감추었고, 한국전쟁 중에는 정읍 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을 꾀하였습니다.
높이 80㎝, 종신 길이 60㎝, 구경 50㎝의 소형이나 명문(銘文)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전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모양은 마치 김칫독을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배 부분[鐘腹]과 견대(肩帶), 구 연대(口緣帶)도 확연하며, 문양대에도 4개의 유곽(乳廓)을 배치하였습니다.
* 배부분에 비천상(飛天像) 대신 보살상을 양각 *
종정(鐘頂)에는 네 발로 천판(天板)을 딛고 용틀임하듯 구부린 용으로 용뉴를 만든 것이나 그 옆으로 음관을 낸 것도 격식 대로입니다.
다만 배 부분에 비천상(飛天像) 대신 보살상을 양각한 것이 다를 뿐입니다.
견대(肩帶)는 두 줄의 띠로 구분하여, 윗띠에는 당초문(唐草紋)을, 아랫띠에는 윗띠의 돌출 부분을 따라 여의두문(如意頭紋)을 배열하였습니다.
견대 밑에는 24개의 작은 원 문양을 돌리고, 그 안에 범자(梵字)를 양각하였습니다.
* 영조4년에 주조된 동종 *
유곽은 각각 당초문을 새긴 사각 띠로 둘러싸고, 그 안에 3단 3열의 종유(鐘乳)가 정연히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 종유 주위는 둥근 연화문(蓮花文)이 받치고 있습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2구의 보살 입상을 배치하고, 그 아래 둥근 모양의 꽃무늬 당좌(撞座)가 2개 있습니다.
당좌 사이에 ‘乾隆三十三年戊子十月施主趙漢寶全南長興步林寺鑄成(건륭 33년 무자 10월 시주조한보 전남장흥보림사주성) 云云’하는 종기(鍾記)가 있습니다.
조한보가 부친의 복을 빌기 위하여 조성하였습니다는 내용입니다.
건륭 33년은 조선 영조 4년(1768)으로, 이 종이 주조된 해를 말해 준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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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정읍) 기본 정보
주차시설 가능 (내장산국립공원 주차장)
쉬는 날 연중무휴
정읍 황토현 전적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정읍 황토현 전적 소개
황토로 덮인 작은 산으로 1894년 갑오동학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전승지입니다.
1894년 4월 초, 관군이 농민군을 쫓아나서자 농민군들은 이를 유인하여 4월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날로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흥덕, 고창, 무장을 점령하였으며, 경상, 충청지방으로까지 농민혁명의 불길이 번져 갔다.
지금 이곳 황토현 마루턱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있고, 이 기념탑 동남쪽 기슭에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이 있습니다.
탑을 등지고 앉아 내려다보이는 길건너 붉은 흙 둔덕과 밭이 강한 인상을 주는 곳입니다.
정읍 황토현 전적 기본 정보
고사부리성(고부구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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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부리성(고부구읍성) 소개
정읍 고사부리성은 해발 132m의 성황산 정상부 두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성으로 백제시대 처음 쌓고 통일신라 때 고쳐 쌓았으며, 조선시대 영조 41년에 관아가 현재 고부초등학교 자리로 옮겨질 때까지 활용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전기까지는 돌로 쌓은 성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흙으로 다시 쌓았습니다.
둘레는 1,050m입니다.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가지 유물과 건물터, 우물터, 물 저장소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상부상항이라 새겨진 백제시대 기와와 말을 탄 병사의 모습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백제시대 5 방성 가운데 중방성의 터였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정읍 고사부리성은 잔존상태가 양호한 다양한 유구와 유물로 인해 우리나라의 고대 산성 연구에 중요하고 획기적인 자료가 되는 중요 문화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주변 관광지로 고부향교, 장문리오층석탑, 군자장, 남복리 미륵암석불, 용흥리 석불입상이 있습니다.
고사부리성(고부구읍성) 기본 정보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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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소개
이 사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을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국가와 민족이 위태로울 때, 거북선을 만들어 수많은 해전에서 왜군을 무찔러 나라를 구하는 큰 공을 세운 한국의 가장 위대한 해군 영웅입니다.
정읍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구미산 중턱에 위치하며, 이순신 장군이 1589년 정읍현감으로 있습니다가 1591년 전라좌수사로 이임했는데, 그가 이곳 현감으로 있을 때의 덕을 추모하고 그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공의 탄신일인 4월 28일에 매년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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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기본 정보
정읍 피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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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피향정 소개
호남 제일의 정자로 널리 알려진 피향정(披香亭)은 원래 이 정자 앞뒤로 상연지와 하연지라는 연못이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었으나 상연지는 일제강점기 때 메워지고 현재는 하연지(태창제)만 남아 있습니다.
연못에 연꽃이 피면 향기가 주위에 가득하다 하여 피향정이라 했습니다.
신라 시대에 최치원 선생이 태산 군수로 재임 중에 이곳에서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습니다는 전설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정자는 조선 시대 중기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입니다.
4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주위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대표가 되는 정자 중 하나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입니다.
해마다 피향정 문화축제에서는 부임 축하연 등의 전통문화를 재현하고 죽력고 시연과 다도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피향정 앞에는 태창제 저수지와 함벽루가 있어 연꽃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인근 관광지로 태인향교, 태인동헌, 정토사, 고택 문화체험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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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피향정 기본 정보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소개
무성서원은 신라말 유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임 중 쌓은 치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고려시대 지방 유림의 공의로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생사당(生祠堂:생존해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창건하여 태산사라 하였습니다.
고려 말에 쇠약해졌다가 1483년(성종 14) 정극인이 세운 향학당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습니다.
그 뒤 1549년(명종 4) 신잠의 생사당을 짓고 태산사에 배향하였으며, 1630년(인조 8) 정극인·송세림·정언충·김약묵, 1675년(숙종 1) 김관을 추가 배향하였습니다.
1696년(숙종 22) 최치원과 신잠의 두 사당을 병합한 뒤 [무성(武城)]이라고 사액되어 서원으로 개편되었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이 서원은 1868년(고종 5)경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그 뒤 계속적인 중수와 보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우·현가루·명륜당·장수재·흥학재·고사 등이 있습니다.
무성서원은 그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향약인 고현동향약을 시행하였으며,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이에 항거하여 1906년 면암 최익현을 맹주로 호남 최초의 의병을 창의한 역사적 현장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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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s://www.jeongeup.go.kr/culture
운영 시간 상시개방
주차시설 있음 (무료)
쉬는 날 연중무휴
선비문화체험관 우리누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선비문화체험관 우리누리 소개
사교 마을은 해발 220m 이상의 중산간 지역에 위치하며, 이곳에서는 1965년 섬진강 다목적댐 축조로 형성된 옥정호와 노령산맥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상수원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친환경·청정 농산물을 생산키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장수마을로도 유명하다.
마을 내 우리누리 문화원에서는 전통적인 생활예절과 선비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97년 폐교된 두월 초등학교를 서예가 김두경 관장이 매입, 2000년 우리누리 문화생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단전호흡, 다도 실습, 솟대 만들기, 천연 염색, 흙놀이, 떡메치기와 한자 공부, 예절교육 등 다양한 체험과 전통놀이 그리고 서예, 국악, 탈춤, 기타 연주 등 각종 예술체험을 통해 전통문화의 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캠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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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선비문화체험관 우리누리 기본 정보
주차시설 주차 가능
정읍 전봉준 유적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정읍 전봉준 유적 소개
이곳은 녹두장군인 전봉준(1854~1895) 선생이 동학운동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입니다.
고종 31년(1894) 갑오 동학 혁명 당시 전봉준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4칸 집입니다.
그런데 서편으로 한 칸을 근래에 붙여 지은 것으로 원래는 방 1칸, 광 1칸, 부엌 1칸으로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입니다.
이 고택은 기리 보존하기 위하여 정읍시에서 1974년에 크게 수리한 집입니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안채(초가)는 높이 15㎝의 잡석의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윗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끝방은 살림살이 등을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된 것 같다.
큰방과 윗방은 장지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은 두 가지 다 연동 천장입니다.
그리고 두 방의 전면에는 퇴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습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습니다.
주위에는 흙담이며 짚으로 된 이엉을 덮었습니다.
전봉준의 공초록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습니다고 했는데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양간다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합니다.
갑오년 1월에 봉기한 후 안핵사 이용태가 내려와 동학교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의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는데 이 때 전봉준의 집도 불타버렸다고 합니다.
그 동안에 이론(異論)이 있었으나 1974년에 보수를 하면서 해체 작업을 하는 중에 밝혀진 상량문에 무인(戊寅) 2월 26일(고종 15년 1878) 세운 것으로 되었으니 어쩌면 전부 타지는 않고 남아 있는 폐옥을 보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읍 전봉준 유적 기본 정보
지금까지 전북 정읍 가볼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