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 가볼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드릴 내용은 전북 전주 가볼만한 곳 베스트10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덕진공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덕진공원 소개
전주는 마한시대 이래 호남지방에서 규모가 큰 고을로 그 이름은 마한의 원산성에서 유래했습니다.
40여년 간 후백제의 수도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이성계의 선조가 살았던 고향이라는 이유로 완산유수부로 개칭되기도 했습니다.
전주에서 볼거리로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덕진공원에 피는 연꽃입니다.
그 만큼 덕진공원 연못은 전주의 명물입니다.
전주 IC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팔달로변에 위치한 덕진공원은 고려시대에 형성된 자연호수가 1978년 4월 시민공원 결정고시에 의거, 도시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취향정과 더불어 유서깊은 곳입니다.
4만 5천평의 경내에는 남쪽으로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연못과 북쪽의 보트장을 동서로 가로지른 현수교가 그 사이를 양분하고 있습니다.
그윽히 풍기는 연못중앙으로 아치형 현수교를 거닐면서 한없는 시정에 젖어볼 수 있습니다.
특히, 대대적으로 정비공사를 하여 1998년부터 재개장한 공원의 특색은 마운딩 시공으로 향촌의 작은 숲(언덕)을 연상케 하고, 전통 정자와 창포늪을 조성하여 역사성을 극대화하였고 또한 인공폭포와 목교를 설치하여 자연친화시설로 시민의 정서에 맞도록 조성하였으며 단오절에는 연못물로 부녀자들이 아침 일찍 머리를 감고 한해 건강을 기원하는 단오 창포물 잔치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덕진공원 안에는 "어린이 헌장", "신석정 시비", "김해강 시비", "전봉준 장군상" 등 9개의 석조 기념물이 조성되어 연꽃 향기와 더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전주의 정취를 안겨주는 문화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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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공원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s://www.jjss.or.kr
운영 시간 공원 - 상시개방 음악분수 - 운영시간 홈페이지 확인필요 (계절별 날씨별 상이할수있음.)
주차시설 주차 가능(70대)
쉬는 날 연중무휴
전주 풍패지관 (전주객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전주 풍패지관 (전주객사) 소개
* 조선시대의 객사, 전주 풍패지관(구, 전주객사) *
풍패지관은 1975년 3월 31일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객사는 객관이라고도 하며, 고려·조선 시대에 왕명으로 벼슬아치들을 접대하고 묶게 한 일종의 관사를 말합니다.
감실에는 궐패(闕牌)를 모시고 망궐례인 임금에 대해 예를 올렸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과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 붙어져 있습니다.
전주객사는 1473년(성종 4)에 전주서고를 짓고 남은 재료로 개축하였습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원래 주관(主館)과 그 좌우에 동익헌(東翼軒)·서익헌(西翼軒)·맹청(盲聽)·무신사(武神祠)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1914년에 북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도로 확장공사로 좌측의 동익헌은 철거되었습니다가 1999년에 복원했습니다.
현재는 주관과 서익헌, 동익헌, 수직사(守直舍)만 남아 있습니다.
* ‘전주객사’에서 ‘풍패지관’으로 *
약속을 정할 때 마땅한 장소가 생각나지 않으면 전주 한복판에 자리 잡은 전주객사는 만인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습니다.
수십 년간 전주시민의 약속 장소였던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의 전주객사(全州客舍)가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豊沛之館)으로 바뀌었습니다.
관사 또는 객관으로 불린 객사는 전주뿐 아니라 고려 이후 각 고을에 설치돼 방문한 외국 사신의 숙소나 연회장으로 사용됐고 조선시대에는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린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객사가 전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데다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면서 명칭이 왜곡돼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으로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전주 객사의 정문은 주관을 앞면으로 내삼문, 중삼문, 외삼문이 있었는데, 실제 주관 앞면에는 ‘풍패지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풍패지관은 조선에 온 중국 사신 주지번이 익산의 선비 송영구를 찾아가던 중 이곳에 들렀습니다가 쓴 글씨로 전해진다.
‘풍패’란 한나라를 건국했던 유방(劉邦)의 고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건국자의 본향을 일컫습니다.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풍패지향’이라 했으며 전주 객사는 ‘풍패지관’이라고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이나 시민의 반응도 갑작스런 명칭 변경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면서도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이제부터는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에서 만나자”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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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패지관 (전주객사) 기본 정보
주차시설 없음
한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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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 소개
한벽당은 조선왕조 태조의 개국을 도운 공신이며,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월당 최담 선생이 태종 4년에 별장으로 건립하였는데, 한벽청연이라 하여 전주 8경의 하나로 꼽던 곳입니다.
한벽당은 전주뿐만 아니라 호남의 명승으로 알려져 시인 묵객들이 그칠새 없이 찾던 곳으로 원래 옥처럼 항시 맑은 물이 흘러 바윗돌에 부딪혀 정경이 마치 벽옥한류 같다 해서 한벽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전해지는데, 한벽당이라 불리게 된 연대는 알 수 없고 다만 월당 최담의 유허비에 월당루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애초 월당루라고 불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건평은 7.8평입니다.
한벽당 기본 정보
전주 남고산성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전주 남고산성 소개
전주시의 중심을 이루는 중앙동, 풍남동, 전동 등에는 유서 깊은 문화 유적이 많다.
또 전주시에는 산성도 있어 동서학동에 남고산성이 있고 전주시 서북쪽에는 위봉산성이 자리합니다.
전주 교육대학 뒤로 올라가면 220m 높이의 남고산 정상을 중심으로 둘러쌓은 2.95㎞ 길이의 남고산성이 있습니다.
축조 연대는 후백제의 견훤이 처음으로 쌓았습니다는 설과 그 이전부터 있었습니다는 설도 있습니다.
고덕산 줄기인 남고산에 쌓은 이 산성은 조선조 순종때 수축하여 남고진을 이곳에 두었으며 효종때 설치한 중 진영과 숙종 때 쌓은 위봉산성과 함께 이 고장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고 합니다.
산성 안의 남고사 앞쪽에 남장대, 뒤편에 북장대를 두고 남장대 아래 계곡에 군기고, 화약고 등이 있었으며, 산성 별장 1명이 22명의 지휘관과 1,400여 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주둔하고 있었습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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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남고산성 기본 정보
오목대와 이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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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와 이목대 소개
한벽당과 전주향교의 북쪽 4차선 노변, 벼랑같이 솟은 언덕에 세워진 오목대는 고려 말 우왕 6년(1380년)에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조상인 목조가 살았던 이 곳에 들러 승전을 자축한 곳으로, 그 후 고종 황제가 친필로 쓴 태조고황 제주필유지비를 세웠다.
여기서 육교를 건너서 이목대가 있는데, 천주교의 성지 치명자산이 있는 승암산 발치에 위치합니다.
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면 70m 위쪽으로 이목대가 있는데 건물이 있는 80m 아래쪽에 비석과 비각을 세웠다.
이 비 속에는 목조대왕 구거유지라 새겨져 있는데 고종 황제의 친필입니다.
목조는 조선조를 건국한 이태조의 5대 조로, 목조가 어릴 때 이곳에서 진법놀이를 하면서 살았던 유적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러한 내용이 용비어천가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목조가 당시의 전주 부사와의 불화로 이곳에서 함경도로 옮겨간 것이 이성계로 하여금 조선조를 건국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으므로, 이를 하늘의 뜻이라고 여겼다 합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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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와 이목대 기본 정보
홈페이지 전주 문화관광 http://tour.jeonju.go.k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운영 시간 00:00~24:00
쉬는 날 연중무휴
전주 풍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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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남문 소개
조선왕조가 개국하자 전주는 풍패지향으로 중시되어 태조 원년(1392)에 완산유수부로 승격되면서 호남지역을 관할하는 전라도의 수부가 됩니다.
중국 진 왕조 이후 중국 천하를 재통일한 인물이 한고조 유방입니다.
그는 풍패(지금의 강소성 패현) 출신이었습니다.
전주는 조선 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관향. 그래서 유방의 고향 풍패에 견주어 과거에는 전주를 흔히 풍패향, 풍패지향이라 불렀습니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에는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전주성의 남문이 바로 풍남문입니다.
후백제의 왕도였으며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전주를 상징하는 풍남문은 유서 깊은 성문으로 근래에 복원하여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주의 명물입니다.
이러한 풍남문은 고려 공양왕 원년 때(1388년) 최유경 관찰사가 축조하였으나, 영조 때(1734년) 조현명 관찰사가 부성을 크게 개축하였습니다고 하며 이 때 동.서.남.북문 등이 헐려져 없어지고 3층으로 된 남문만이 남았던 것이 근래에 고증에 의해 복원되었습니다.
영조 43년 3월(1767년)에 크게 불타버렸는데, 관찰사 홍낙인이 성루를 복구하고 명칭을 풍남문으로 바꾸었습니다.
풍남문이 겪은 큰 사건은 정유재란 때 왜적이 전주부성으로 침공하자 성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가 전세가 불리하여 퇴각하였고, 이 때 왜군이 며칠을 머무르면서 불태워버린 일이 있었으며, 그 후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둔 동학군이 고창, 함평, 원평을 거쳐 노도와 같이 전주로 진격하여 풍남문에서 격전 끝에 관군을 물리치고 입성하여 마침내 일시적이나마 화약을 맺기도 한 의의가 큰 성문입니다.
풍남문 종각에서 파루를 쳐서 부성 안에 조석을 알렸던 종소리는 이제는 서울 보신각 종처럼 제야(1월1일 0시)에 종소리를 울려 이 고장의 새해 새 희망을 안겨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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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남문 기본 정보
관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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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묘 소개
이 관성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과 제갈공명의 영정을 봉안하고 춘추로 제사 지낸다.
이 관성묘의 구조를 보면 노변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 30m 높이의 중앙에 본전이 자리잡고 좌측에는 서무, 우측에는 동무 등 특이한 구조로 된 한식 건물의 전각입니다.
조선말기의 화가 소정산이 그린 삼국연의도의 10폭 그림이 보존 되어 있습니다.
본전 네 기둥에는 각각 법훈을 유려한 필체로 써서 걸어 놓았는데 중국의 영웅 관우를 이 나라에 봉안한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성묘 기본 정보
조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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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단 소개
덕진시민공원 내 건지산 줄기에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조경단은 1973년 6월 23일에 전라북도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태조의 21대조 이한은 묘역을 특별히 수호하도록 명했으며 이후 역대 왕들도 그와 같이 정성을 다해 보호해 왔다.
특히 고종은 1899년(광무 3) 5월에 이곳에 단을 쌓아 당상관을 배치하고 비석을 세워 전주이씨 시조의 묘로 정하고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라 명명했습니다.
또한 해마다 한차례 제사를 지냈으며 단을 중심으로 450정보의 단역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경기전, 조경묘와 함께 전주가 왕조 전주이씨의 발상지라는 의의를 한층 현실화한 조치였다.
전주이씨 선원계보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사공 벼슬을 지낸 이한을 시조로 18대인 목조까지 전주에 기거하였습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고 합니다(태조 22대). 경내 1만여 평의 주변을 돌담으로 쌓고 동·서·남·북문을 두었습니다.
조경단 남쪽 20m 지점에는 고종이 세운 비석이 비각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비석은 거북등 위에 세워졌으며 너비 1.8m, 두께 0.3m, 높이 약 2m로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비석 앞면에 새겨진 ‘대한조경단’이라는 글씨와 비문은 고종의 어필입니다.
비각은 한 변이 7.2m인 정사각형 3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 조선왕실의 뿌리 *
1771년(영조 47)에 칠도 유생들은 조선왕조 시조인 사공 이한과 동비인 경주김씨의 위패를 봉안하는 시조묘의 건립을 건의했습니다.
태종대에 경기전을 세웠고 영조대에는 조경묘를 세워 선원경봉지지로서 전주로 숙원을 굳혔는데, 동학혁명군으로 전주가 한때 점령되자 태조 영정과 함께 조경묘 위패도 위봉산성에 피난하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건지산에는 조경단을, 발산에는 목조의 유허비를, 오목대에는 태조의 주필유지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1899년 3월 11일에 궁내부특진관인 ‘조경단봉심재신’으로 이재곤이 전주에 와서 건지산 묘소검분이 실시되었습니다.
설단·수비·건재의 후보지는 따로 지관이 정하기로 하고 동서 3,360척, 남북 3,520척의 경내 묘소는 모두 없애버리고 창경토지나 단의 좌우 계곡에 인접된 전답은 본단 수봉궁에 속하게 할 것을 제언했습니다.
마침내 고종 어필의 전제와 찬문으로 대한조경단비가 건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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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단 기본 정보
충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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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경사 소개
남고산성을 가는 길목인 전주교대에서 200여m 지점 가파른 산자락 아래 충경사가 나온다.
이 충경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이정란의 공적을 기려 세운 사당입니다.
이정란은 관직에서 물러나 있습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전국을 석권하고 호남으로 밀어닥치자 의병을 모아 전주성을 지킬 것을 다짐하고 진안쪽으로 소양을 거쳐 공격해오는 왜군을 64세의 나이로 말 타고 나아가 300여 명의 왜군을 무찌르는 등 혁혁한 공훈으로 전주부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정유재란 때는 공이 전주를 수성합니다는 소문을 듣고, 왜군이 재빨리 도망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의 용기와 충정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순조 때 충경공의 시호를 나라에서 내렸다.
오늘날 전주시를 동서로 가로지른 도로를 충경로로 명명한 것은 충경공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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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경사 기본 정보
전주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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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동물원 소개
덕진공원 정문을 나와 연못을 끼고 동쪽으로 1㎞정도 가면 축구장, 배구장 등 각종 운동 시설을 갖춘 체련공원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 있고, 여기서 동쪽으로 놀이시설(전주드림랜드)이 포함된 전주동물원이 나온다.
1978년 6월 10일 개원한 전주동물원은 지방동물원으로는 유일하게 호랑이, 사자, 기린, 하마, 들소, 큰뿔소, 낙타, 침팬지, 캥거루 등 동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희귀동물인 반달가슴곰, 얼룩말, 재규어 등 총 106종에 670여 마리의 동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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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전주동물원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zoo.jeonju.go.kr
운영 시간 하절기(3~10월) 09:00~19:00
동절기(11~2월) 09:00~18:00
※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 야간개장(4월중/홈페이지 확인) 09:00~22:00
주차시설 있음(전주시 시설관리공단 063-277-5027)
쉬는 날 연중무휴
지금까지 전북 전주 가볼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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