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가볼만한곳 베스트10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드릴 내용은 대구 가볼만한 곳 베스트10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녹동서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녹동서원 소개
1789년(정조 13) 지역 유림에서 유교적 문물과 예의를 중시하였던 김충선의 뜻을 기려 건립하였습니다.
이후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습니다가 1885년 다시 지었고 1971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습니다.
경내에는 사당인 녹동사(鹿洞祠)와 향양문, 유적비, 신도비 등이 있으며 해마다 3월에 제사를 지낸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참전하였습니다가 조선에 귀순하였습니다.
이후 조총제작 기술을 전수하고 경주, 울산 전투에서 공을 세워 조정으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성과 이름을 하사받았습니다.
이후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당시에도 큰 역할을 하였으며 말년에는 낙향하여 향리교화에 힘썼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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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동서원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www.cha.go.kr
운영 시간 하절기(3~9월) 10:00~18:00
동절기(10~2월) 10:00~17:00
주차시설 주차 가능
쉬는 날 설/추석연휴
육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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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 소개
육신사는 삼촌에게 왕권을 빼앗긴 어린 왕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 숨진 사육신으로 일컫는 조선 세조 때의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를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玄孫)인 박계창이 선생의 기일에 여섯 어른이 사당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뒤 하빈사(河濱祠)를 지어 제사를 지내다가, 숙종 20년(1694년) 낙빈(洛濱)이란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고종 3년(1866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페령으로 낙빈사가 서원(書院)과 함께 철거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위패를 다시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74년부터 1975년 사이에 ‘충효 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사당을 재건하였고,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전통가옥을 복원하였습니다.
사우건물인 숭정사에는 육신과 더불어 박팽년의 부친인 중림(仲林, ?~1456년)의 위패도 함께 봉안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경내에는 이외에도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인 숭절당, 태고정(보물), 외삼문, 내삼문, 홍살문, 삼층각 등이 있고 사당 앞에는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각비(1979년 건립)가 세워져 있습니다.
육신사 기본 정보
주차시설 주차 가능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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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소개
도동 측백나무 숲은 해방 이후 1962년 12월 7일 대한민국 천연기념물로 재지정 되었습니다.
측백나무는 단양, 울진, 안동 등에 분포하고 있으나 도동 측백나무 숲은 측백나무의 남방 한계선인 대구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점, 불로천 하식애 면에서 자생하는 점 등에서 식물지리학 및 생태학적으로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습니다.
현재 도동 측백나무 숲은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출입 제한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도동 측백나무 숲의 특성을 살려 2016년 국토부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 '천연기념물 ONE 도동문화마을 조성사업'이 선정되어 사업의 일환으로 측백향 커뮤니티센터를 조성하여 1층은 로컬푸드 판매장과 마을 회의실, 2층은 측백향 카페와 천연기념물 홍보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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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기본 정보
대구부수성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구부수성비 소개
조선 고종 때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였던 김세호(金世鎬)가 대구부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뒤, 그 기념으로 세운 비입니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그 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입니다.
누각의 이름은 동을 정해루(定海樓), 서를 주승루(籌勝樓), 남을 선은루(宣恩樓), 북을 망경루(望京樓)라 하였습니다고 합니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입니다.
비문의 내용은 1870년(고종 7) 봄에 수리를 시작하여 그 해 11월에 마쳤는데, 원래 보다 높이와 크기를 키워서 동서남북의 성벽(城壁) 위에 새로이 4개의 누각(樓閣)을 세웠다는 공사에 관한 내용과, 유공자에게 상을 내린 일이 적혀 있습니다.
고종 6년(1869)에 세운 비로, 관찰사 김세호가 직접 비문을 짓고, 당시 공사 책임관이었던 절충장군(折衝將軍) 최석로(崔錫魯)가 글씨를 썼다.
이 비는 본디 남문 밖에 세워진 것이었으나, 광무 10년(1906) 대구부성이 헐리면서 갈 곳을 잃었습니다가 1932년 대구향교 경내로 옮겨졌고, 1980년 영남 제1관문을 고쳐 세우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대구부수성비 기본 정보
영영축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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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축성비 소개
영영축성비는 영조 12년(1736)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 도호부사인 민응수가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입니다.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입니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45보(步)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습니다.
석성의 공사기간은 6개월이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합니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습니다 합니다.
민응수가 비문을 짓고, 백상휘가 글씨를 썼으며 경상도 관찰사였던 민응수가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3년(1737) 대구 남문 밖 관덕정 터에 세워두었습니다.
그러나 광무 10년(1906) 대구 군수 박중양이 대구 읍성을 헐면서 달성 군청 부근으로 옮겨졌으며, 1932년 대구향교로 이전하여 보존되다가 198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영영축성비 기본 정보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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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소개
한 채의 비각 안에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비로 왼쪽에 있는 이공제비는 대구판관을 지낸 이서 선생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대구 주민들이 세운 송덕비(頌德碑)입니다.
당시 대구는 하천이 중심부로 흘러 홍수 때마다 피해가 극심하였습니다.
조선 정조 즉위년(1776) 대구판관으로 부임해온 이서 선생은 주민들의 피해를 염려해 정조2년(1778) 자신의 재산을 털어 10여리에 걸쳐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려 홍수의 피해를 막았습니다.
홍수의 피해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물길을 돌려 새로 만든 냇물을 ‘신천 ’이라 부르고, 제방의 명칭도 ‘이공제 ’라 한 후 정조 21년(1797)에 이공제비를 세우고 매년 1월 14일에 그를 기리고자 향사를 올렸다.
중앙의 비는 1986년 신천대로 공사 때 수성교 서쪽 제방에 있던 것으로 여러 차례 장소를 옮겼다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808년(순조 8)에 세운 것으로, 이공제비가 초라해 이서 선생의 업적을 영구히 기리고자 다시 비를 세운다고 적혀 있습니다.
오른쪽에 서 있는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는 광무 3년(1899)에 세운 비로, 고종 때 대구수령으로 있던 이범선의 공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1898년 큰 홍수가 일어나 이공제의 하류부분이 훼손되어 대구읍성이 위험하게 되자, 이범선이 주민 부담없이 국고로 수천금의 비용을 들여 빠른 기간에 보수공사를 완성하여 주민들의 근심을 덜어주었습니다.
이에 보답하고자 이곳 주민들이 비를 세워 이공제비와 함께 보호하고 있습니다.
3기 모두 대구지방 수령을 지냈던 이들의 업적을 기리고자 주민들이 나서서 세운 것으로, 이들이 오늘날의 대구를 이루게 한 사람들이라는데 큰 의의를 지닌다.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기본 정보
대구 고모령비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구 고모령비 소개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습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습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 어린 인생 고개 몇 고개이더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서린 하소 적어 가면서 오늘 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이라는 3개의 산봉우리가 되었고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렸고 망우공원에서 파크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대구 고모령비 기본 정보
수성못 유원지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수성못 유원지 소개
수성유원지는 범물동 용지봉(629m)에서 북서부로 뻗어 내린 줄기의 하부에 위치하여 주변의 완만한 산지와 수성못을 끼고 자연의 경관미를 이루고 있습니다.
1925년에 조성된 수성못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저수량도 70만에 달하고 21만 8000㎡의 면적에 못 둘레도 2,020m에 이른다.
수성못은 1925년 일제강점기에 농업용수 공급용으로 조성된 인공 못이었습니다.
지금은 수변 휴식공간으로 활용되어 연중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있습니다.
수성못 주변에는 벤치와 수목, 산책로 유람선 선착장, 우주선, 유람선, 바이킹, 범버카, 회전목마 등의 놀이시설을 갖춘 수성랜드가 어우러져 유원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보트놀이와 오리배 등을 즐길 수 있는 수성못과 어린이 놀이터, 두산폭포 등 볼거리, 즐길거리가 있어 가족나들이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적격입니다.
2007년 9월 설치된 영상음악분수는 5월부터 10월까지 매일 4회에 주간, 야간 공연을 하며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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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유원지 기본 정보
팔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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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거산성 소개
대구팔거산성은 금호강과 대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함지산(287.7m)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으며 산 정상을 돌아가며 축조된 테뫼식 산성입니다.
함지산은 산의 모양이 함지를 엎어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함지산 또는 함지의 방언인 방티산이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팔거산성도 함지산성 또는 방티산성으로 불렀습니다.
다양한 역사기록을 통해 팔거산성이 위지한 지역의 명칭이 팔리현(삼국), 팔거현(고려), 성주목의 팔거현(조선), 팔거(이칭 칠곡) 등으로 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팔거산성의 옛 명칭인 독모성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행정구역 이름을 따라 노곡동산성이라고도 합니다.
발굴 조사 결과 신라시대 산성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식인 현문식 구조, 곡성 등이 신라시대 축성양식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고 완만한 경사의 성벽, 곡성과 성벽의 접합부 축조방식 등을 통해 해당 산성만의 독특한 축성 양식이 있습니다는 점에서 가치가 뛰어나다.
성내에 공동묘지와 헬기장, 방공호 등이 들어서 산성의 일부가 훼손되었습니다.
2015년 함지산 내 인접한 대구 구암동 고분군과 함께 팔거산성의 현황 조사와 유적의 보존 관리 및 정비 활용 방향을 설정하기 위하여 정밀 지표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등산로를 정비하여 운암지수변 공원에서 출발하는 운암지 만리길도 개설하였으니 함지박을 닮은 산과 운암지의 아름다운 수변공원의 정취를 함께 즐기는 대구 역사문화 밸트로 옛사람들의 삶을 그려보는 것도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팔거산성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www.buk.daegu.kr/tour/index.do
http://www.cha.go.kr
주차시설 있음 (운암지 수변공원 공영주차장)
요금(- 최초 30분 : 400원 (30분초과시 10분마다 200원)
- 일주차 : 4,000원)
운암지 수변공원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운암지 수변공원 소개
운암지 수변공원은 함지산 아래 운암지에 조성된 수변공원입니다.
대구북구 8경의 제3경이며 대구 시민들이 즐겨찾는 공원으로 물과 산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입니다.
운암지는 대략 일제강점기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함지산을 비롯하여 해발 고도 200~300m의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계곡에 조성되었고 인근 칠곡 들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였다.
이곳 수변공원은 대구 칠곡3지구에 대규모 택지개발 이후 쓸모가 없게 된 저수지를 자연 그대로 보전하여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조성되었습니다.
수변공원에는 높이 10m, 폭 25m 규모의 인공폭포인 벽천폭포, 저수지를 가로지르며 수변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수변 데크로드(약160m) 및 팔각정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초화류와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제비붓꽃, 수질정화 식물로 부채붓꽃,수련 등이 식재되어 상세한 안내판을 통하여 생태학습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름날엔 기온을 낮추기 위해 설치한 쿨링포그와 물고기, 오리가족이 어린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있습니다.
공원내에 분수, 수변무대, 산책로, 어린이놀이시설, 계류, 체육시설, 파고라, 정자 등을 갖추고 있어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쉼터로 자리매김 하고 있으며 둘레길에서 달 포토존, 움직이는 물고기, 수달 등 생동감 있는 로고라이트가 야간 볼거리를 제공하여 야간 산책 힐링터로도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바로 이웃하여 대구 구암동 고분군, 팔거산성누리길이 자리하니 자연과 함께 역사문화를 느끼며 산책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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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지 수변공원 기본 정보
홈페이지 http://www.buk.daegu.kr/tour/index.do
주차시설 운암지수변공원 공영주차장 이용
요금(최초 30분 400원 (30분 초과 시 10분마다 200원) / 1일 주차 4,000원)
쉬는 날 연중무휴
지금까지 대구 가볼만한곳 베스트10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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